※ 모든 축구인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을 전제 하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많은 축구인들에게 해당한다는 말씀은 드릴 수 있겠군요.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 사건을 접하고 "축구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축구를 망치는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축구가 삶의 모든 것'인 사람들이 축구판에 독약을 뿌린 셈입니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축구로 먹고 사는 소위 축구인들. 아이러니 하게도 축구인들이 축구를 망치는 사례를 많이 보았습니다.
지역의 작은 축구단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전국 모든 축구장이 나의 집"이라고 생각하는 축구인들의 특권의식 입니다.
저는 축구장 출입구 봉사를 많이 했습니다. 구단 관계자가 아니면서 무료로 경기를 관전하고자 본부석을 통해 들어오는 무임승차객을 막는 것이 출입구 봉사자의 주된 임무입니다.
일반 팬들은 본부석으로 입장을 시도하다 "여기는 관계자석입니다. 나가셔서 매표소에서 표를 구해서 일반 관중 출입구를 이용해 주세요"라고 안내를 하면 대부분 수긍하고 돌아갑니다.
부천종합운동장의 본부석 출입구. 많은 축구인들은 자신이 이 경기가 무슨 경기이고,
경기하는 구단이 어디인지 따지지 않고 무조건 이곳을 통해 공짜로 경기를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위 축구인들은 막무가내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선수 출신이고, 국가대표 감독 친구야. 비켜!"
이 정도는 양반입니다. 본인 뿐 아니라 온가족을 다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막아서면 위아래도 보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도 합니다.
"어디 시 축구협회 임원인데, 무슨 입장료야. 관계자 몰라?"
관계자? 제가 자원봉사를 하는 팀은 팬들이 피와 눈물로 만든 팀입니다. 물론 축구인들의 도움도 컸습니다. 아무튼 이 구단과 관련되어서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관계자?
"아니, 입장료 5천원도 없으세요?" 또는 "돈이 아까우세요?"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 옵니다.
근 2년 이상 중앙 출구봉사를 하면서, 축구인의 무임승차를 수백차례 보았습니다. 많은 팬들은 입장료 내고 들어와서 자원봉사까지 하는데, 뒷짐지고 무료로 들어와서 폼을 잡는 사람들 숱하게 보았습니다.
우리 구장에 원정 온 팀들은 종종 가족도 데리고 옵니다. 당연히 그들은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우리 팀 가족들도 다 입장료 내고 입장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무단 입장을 시도합니다. 입장료를 내라는 말에 선수들조차 "축구를 왜 돈 내고 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더러워서 축구 안본다"는 말도 들어 봤습니다.
이 말 한마디에 많은 축구인들의 착각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축구 선수니까 또는 축구 경기인 출신이니까 축구장은 다 공짜다라는 생각. 그리고 축구는 입장료를 내는 관중이 만들어 주는 세계가 아니라 돈 많은 구단주나 협회가 만들어 주는 세계라는 생각.
축구를 진정 사랑한다면, 돈을 내고 경기장에 들어가야 한다.
음악을 또는 영화를 사랑한다면 불법 다운로드를 해서는 안되는 것과 같다.
축구인들의 처절한 무임승차 정신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보시고 싶은 분은, 부천FC 홈경기 중앙출입구 자원봉사를 권합니다. 전국에 축구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또 그들의 특권의식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또는 자신의 후배들이 힘들게 만든 컨텐츠를 돈을 내고 보는 게 아깝다는 것. 자신이 힘들게 만들어 내는 결과물의 가치를 '공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게 적지 않은 축구인의 마인드입니다. 그들이 축구를 사랑한다면 돈을 내고 축구를 봐야합니다.
공짜의식 속에 축구는 병들어 갑니다. 수익없이 광고와 모기업의 지원으로 생존하는 축구는 한계가 있습니다. 축구를 사랑하는 축구인이 '돈내고 축구 보는 운동'에 앞장 서야 합니다. 자신들과 후배들이 노력해 만든 컨텐츠를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보도록 해야합니다.
공짜로 축구를 보겠다는 축구인들. 그들은 축구를 사랑하는 걸까요? 아니면 자신의 과거와 연배를 과시하고 싶은 걸까요?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들. 그들은 축구를 사랑하는 걸까요? 아니면 돈을 사랑한 걸까요. 축구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참 궁금합니다.
<축구 ... 이야기..>
스포츠스타는 당신들의 액세사리가 아니다
손님은 없는데 종업원이 고액 연봉 받는 식당?
K리그는 이미 2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프로축구와 모기업 홍보의 잘못된 만남
'축구 > football itself'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의 주인공이 되고픈 일부 심판들 - '축구인'들이여! 축구를 더 사랑하자 ③ (0) | 2011.06.01 |
---|---|
삶의 터전인 바다에 죽음을 선사하는 어부들 - '축구인'들이여! 축구를 더 사랑하자 ② (2) | 2011.05.31 |
한국 프로축구와 유럽 프로축구의 결정적 차이 (2) | 2011.05.25 |
소통과 자존심. 클럽발전을 위한 2개의 주요 전략 (0) | 2010.11.14 |
이탈리아가 2002년 주심 모레노에 집착하는 이유 (2) | 2010.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