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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472

3부리그 부천FC, 부천시 및 후원사에 대한 방송 PPL 효과는 K리그급 [부천시는 부천FC를 다시 봐야 한다②] 앞선 포스팅에서는 부천FC가 미디어의 기사화를 통하여 연고지역인 부천시를 얼마나 홍보 했는지 알아 보았습니다. (링크 : http://eastman.tistory.com/820 ) 이번에는 PPL 효과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PPL은 Product Placement 의 줄임말입니다. 제품을 어딘가에 내려 놓는 것. 즉 영화나 드라마 등에 등장하는 식탁에 특정 음료수를 슬쩍 올려 놓으면, 관객 또는 시청자들이 해당 음료수를 마시게될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마케팅 기법입니다. 이런 넛지(nudge)식 PPL 기법은 점차 과감해 집니다. 살짝 스치는 게 아니라, 특정 음료수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특정 옷을 입히거나, 특정 자동차를 타게 합니다. PP.. 2011. 12. 23.
2억5천 부천FC, 100억 부천SK 육박하는 지자체 홍보효과 [부천시는 부천FC를 다시 봐야 한다①] 경기도 부천시에는 부천FC 1995라는 3부리그, 즉 챌린저스리그 축구팀이 있습니다. 이 축구단은 부천시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부천FC 구단과 팬들은 연고지역 자치단체인 부천시에 구단에 대한 지원을 늘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요구는 정당한 것일까요? 아니면 축구팬들의 이기적인 부탁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부천FC는 불과 2억 5천만원의 1년 예산으로 운영되면서 연고지역인 부천시를 수억원의 가치만큼 홍보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겠네요. "지자체를 홍보해서 뭐하지?" 오.. 예리하면서 일리있는 질문입니다. 시청마다 지자체를 홍보하는 조직이 있습니다. 필요하니까 있는 것이겠죠. 수원, 부천, 성남, 고양, 포천, 의정부, 남양주, 양주, 이천,.. 2011. 12. 22.
존 듀어든의 BFC풋볼마케팅아카데미 2기 수강생 모집 국내 최초 축구마케팅 전문 아카데미·각 분야 실력자 대거 강사로 참여 1기 성공적 모집 및 진행·수강생 건의 대폭 수용 2기에 반영 부천FC, 인턴 교육에 대한 성과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인재양성 시스템 구축 부천FC 1995, 마케팅 전문업체 PLS미디어, 축구 칼럼니스트 존 듀어든이 함께 하는 BFC풋볼마케팅아카데미가 2012년 1월 12일 개강을 앞두고 2기 수강생 모집을 시작했습니다. BFC풋볼마케팅아카데미에는 존 듀어든, 한준희 KBS 해설위원을 비롯해 대형 광고대행사 부장급 스포츠마케터, 주요 포털사이트 스포츠 마케터, 중앙스포츠 일간지 축구기자, 축구관련 협회 관계자, 국내 대기업 스포츠커뮤니케이션 담당자 등 실전과 이론을 두루 소개할 수 있는 강사진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광고대행사, 언론사 .. 2011. 12. 22.
부천FC 1995 초대감독 곽창규 첫 인상은 뭐랄까, "참 친해지기 쉽지 않은 분이다"였다.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일단 걸음마 수준의 신생 3부리그 구단의 감독을 흔쾌히 맡겠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팬들이 팀을 만들어 가느라 많은 게 미숙했고 힘든 게 많았다. 그런 가운데 감독을 선임하는 것은 팬 집단이 축구 경기인 출신과 접점을 만드는 첫 행위였다. 그의 등장으로 창단 작업 중에 큰 짐을 덜었다. 부천FC 1995의 초대감독 곽창규. 아주대 출신으로 대우축구단에서 선수, 아주대코치, 대우축구단 코치를 거쳐 부명정보산업고 감독을 역임했다. 부천FC 감독 취임 당시 부명정보고 감독과 겸임했다. 이후 수차례 곽 감독과 대화를 하면서 두뇌회전이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대화를 시작하면서 말을 할 때, 머리 속에서는.. 2011. 12. 17.
스포츠토토, SK에너지에 이어 용품후원사 키카 선정 2007년 부천FC 1995 창단 작업 당시 키카(KIKA)는 부천FC 후원에 적극적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있는 회사였고 업계에서의 평판도 좋았다. 우선 키카는 부천FC 유니폼 디자인을 구단에 맡겼다. K리그라면 모를까, K3 구단이 직접 유니폼을 디자인하고, 이를 업체가 생산해 주는 구도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카는 이를 받아들였다. 오히려 권장했다. 이 작업에는 부천FC의 당시 디자인 팀장 김준형님과 서유유나이티드의 당시 장부다 이사님이 동참했고, 장부다님은 유니폼 바탕에 부천과 구단을 상징하는 '복숭아', '1995' 문양을 희미하게 담을 것을 제안하였고, 구단은 좋은 아이디어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김준형 팀장도 열정을 보태서 유니폼이 완성됐다. 나중 이야기지만,.. 2011. 12. 14.
BFC 풋볼 마케팅 아카데미 종강까지 출석률 100% 육박했다 '존 듀어든과 함께 하는 BFC 풋볼 마케팅 아카데미'가 지난 3일 종강파티를 했습니다. 25명의 수강생이 참여한 1기 과정은 마지막 강의까지 대부분의 수강생이 참여했습니다. 수강생들은 3개월에 걸친 과정 중에 축구 마케팅 현장, 축구와 언론 및 방송, 축구와 뉴미디어 등 다양한 강좌를 수강했는데, "소중한 기회였으며 어렴풋하던 축구 마케팅에 대한 기초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과정을 통틀어서 첫 강의부터 종강까지 95~100%에 이르는 높은 출석률을 보인 것은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많은 유사 과정들이 강좌 중반에 수강생들이 상당수 지각, 결석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존 듀어든, 한준희 등 간판 강사 등은 강의 후 수강생들과 일대일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보다 심화된 대화를 하기.. 2011. 12. 8.
부천FC 서포터 헤르메스 "3부리그면 어떠냐. 우리팀이면 된다" 부천FC 1995 창단 작업을 진행하면서 막판에 창단TF에게 부담이 된 것은 "팬들이 내셔널리그(2부)도 아닌 3부리그 팀을 받아들일까" 하는 것이었다. 팀이 없다보니 3부리그 팀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팀이 만들어 지면 그 초라함에 다시 좌절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이제 원정을 가도 상대는 서포터가 없을 것이고, 월드컵 경기장에서의 경기는 있을 수 없었다. 경기 중에 트랙에는 주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을 수 있고, 천연잔디가 아닌 인조잔디 구장에서 경기를 할 수도 있고, 관중석조차 없을 수 있다. 이 때문에 K리그를 호령하던 부천FC의 서포터들이 경기장에 와서 "고작 이딴 구단을 만드었다말이냐"며 실망할까 걱정이었다. 더 팀 창단을 진행하기 전에 K3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알리는 글을 정리.. 2011. 12. 4.
2007년 2월, 팀 창단 작업 진행 중 서포터와 대화 부천FC 1995 창단 작업을 자료와 기록으로 정리하며 지금까지 대행사 선정과정에서의 좌절 내지는 아픔과 지자체와의 엇박자 등을 다루었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정리를 하다보니 한참 진도를 나가다가 "앗! 그 이야기를 빠뜨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도 2007년 11월 1일 부천시와의 연고지 협약식까지 진도가 나가고 보니 이전에 있었던 이야기 중 빠뜨린 것이 좀 있다. 여기서 잠시 시계를 2007년 2월로 돌려서 몇 가지 이야기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 시점에는 축구단 창단을 위한 시민모임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가는 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에는 시의 각종 단체를 하나로 엮어내는 시점이었고, 그것이 의외로 매우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당시, 2007년 2월 27일 부천서포터 헤르메스 게.. 2011. 12. 4.
어렵게 성사시킨 부천FC - 부천시의 연고지 협약 팀을 창단하고 운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 준비되고, 팀을 구성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면서 이제 현안인 부천시와의 연고지 협약을 위한 노력을 했다. 시 측은 연고지 협약 자체를 거부했다. "연고지 협약을 하기 위해서는 구단이 대표성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시민구단이 지역을 대표한다는 근거가 무엇인가", "연고지 협약 이후 팀이 운영되다가 운영자금이 바닥나면 시가 이를 보전해 주어야하는 것인가" 이렇게 두 가지가 주된 거부 이유였다. 첫번째 문제제기는 매우 절절하지만, 이미 부천시 축구협회를 비롯한 관내 많은 단체들이 참여를 하고 있고, 여야 정치인이 모두 참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답변이 비교적 간단했다. 문제는 두번째 문제제기였다. 이 때문에 시에 대한 제안서를 또 준비했다. 제안서에는 팀의 운영방안이.. 2011. 11. 30.
창단 대행사 선정 결국 실패, 남은 것은 팬이 직접 창단 기대가 컷다. 이번에 접근한 업체는 그래도 한국 스포츠마케팅 업체 중에는 베스트급에 속하는 곳이었고, 개인적인 친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 설립 때 우연찮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업체도 심사숙고 끝에 참여가 어렵다고 최종 통보를 했다. 결정을 알리는 과정이 너무나 젠틀해서 불만을 가질 수도 없었다. 다만 너무나 아쉬울 뿐이었다.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제 정말 직접 팬이 구단을 창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먼저 가진 것을 점검했다. 일단 시청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방해세력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지역사회는 표면적으로는 대부분 이름을 걸었다. 그러나 스킨십은 절대 부족한 상황이었다. 관내 정치인들은 관심은 있으나 적극성은 떨어졌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힘은 주었다... 2011. 11. 28.
첫번째 후원사 확정 그리고 다시 창단업체 찾기 창단위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여야가 모두 힘을 합친 모양새였고, 부천시축구협회 등 여러 단체들이 이름을 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과 단체를 엮었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지역사회를 엮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사람들을 만났고, 이광열님 등 서포터 내 연장자(?)들의 인적 네트워크도 큰 도움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뜻으로 힘을 합친 셈이다. 2007년 6월경이었다. 든든한 지원군을 확보한 부천FC 창단TF는 먼저 창단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배기선 의원 등의 노력으로 먼저 스포츠토토의 후원이 약정됐다. 첫번째 후원 약정이었다. 엄청난 진정이었다. 곧이어 SK에너지와의 대화가 시작됐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의 대화도 시작됐다. 뭐가 되어 가는 것 같았다. TF의.. 2011. 11. 27.
부천시에 도대체 왜 축구단이 있어야 하는가? 2 이전글 : 부천시에 도대체 왜 축구단이 있어야 하는가? 1 세번째로 제시한 이유는 부천종합운동장에 관한 것이었다. 이 아름다운 운동장은 무려 1천200억원이 투여된 대형 구조물이다. 축구단이 없을 경우, 이 운동장의 활용도는 아무래도 떨어지게 된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브라질 국가대표가 훈련 베이스로 삼았던 부천종합운동장은 국내 최고 수준의 잔디와 종합운동장이면서도 비교적 그라운드와 관중석이 가까워 다이나믹한 관전이 가능하다. "축구는 문화 컨텐츠의 보고입니다. 문화의 도시를 추구하는 부천시가 절대 놓칠 수 없는 아이템입니다." 이것이 네번째 이유였다. 이 내용은 아래 당시 준비했던 PT 자료의 한 페이지로 갈음한다. 그리고 최근 부천FC를 주제로한 만화가 인터넷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축구가 콘텐츠의.. 2011.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