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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472

비싸다고 소문난 부천FC 유니폼, 두사커에서 할인 판매! 부천FC1995가 2011시즌 유니폼을 할인 판매하는 행사를 진행합니다. 이번 행사의 대상은 2011 시즌의 부천FC 1995 홈 S/S저지와 어웨이 S/S저지이고, 각각 55,000 → 35,000원, 75,000 → 55,000원으로 할인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판매가격은 구단이 제작업체로부터 받는 원가라고 합니다. 부천FC 유니폼은 선수단에게 지급되는 것과 같은 품질이고, 소량생산이기 때문에 가격이 대체로 비싼 편입니다. 이 때문에 학생 계층에게는 다소 부담이 되는 측면이 있었죠. 내년 시즌에는 유니폼 디자인이 변경될 가능성이 있지만, 부천FC 유니폼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2011시즌 부천FC 유니폼은 두사커 닷컴(http://www.dosoccer... 2011. 11. 25.
부천시에 도대체 왜 축구단이 있어야 하는가? 1 배기선 의원 앞에서 주어진 5분 동안, 부천에 왜 축구단이 있어야 하는지 5가지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 논리 중 일부는 다른 도시에 적용이 가능하다. "첫번째. 축구단이 사리진 후 미디어에 부천의 노출 빈도가 급속히 낮아졌습니다. 도시 인지도 제고차원에서 축구단이 필요합니다." 실제 그랬다. 부천SK가 있던 시절에는 관련 기사가 많았다. 수원, 성남, 부천은 축구단이 있는 수도권 도시였다. 안양, 고양, 의정부 등과 비교해 보면 느낌이 온다. 당시 TF는 축구단이 없던 시절과 있던 시절의 '부천시' 관련 기사 수를 세었다. 거의 2배, 3배 차이가 났다(사진 참고). 노출은 인지도와 연결이 된다. 대중은 인지도가 높은 곳에 여행을 하고, 이주를 고려한다. 지금 이야기 중인 미팅이 끝나고.. 2011. 11. 23.
K3팀 창단으로 방향 전환 그리고 배기선 의원과 만남 대행사에 의한 창단과 유명인과 함께 한 창단이 차례로 무산된 후 창단TF는 한달 정도 패닉에 빠졌다. 다시 의욕을 불러일으킨 일은 아마도 5월 경에 일어났다. 당시 개인적으로 대한축구협회의 '주니어보드'라는 조직에서 한국축구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논의할 기회가 있었다. 주니어보드에는 서형욱 해설위원을 비롯한 언론인, 당시 FC서울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마케팅 담당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동렬 붉은악마 전 부회장 그리고 나와 같은 팬들도 서너명 있었다. 이 모임을 담당하던 축구협회 직원 신만길씨는 AFC로 파견을 가게되었고, 김종윤씨가 담당을 하게되었다. 정기모임이 끝나고 간단한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김종윤씨가 "K3 구단은 1년에 3억원 정도면 운영이 가능하다. 현재 창단하는 구단이 많다... 2011. 11. 23.
축구에 서포터의 공간은 얼마나 될까? 축구에 서포터의 공간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다. 축구단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질문에 눈과 귀가 번쩍 뜨일 것이다. 축구단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서포터는 반가우면서도 힘들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서포터는 축구의 일부, 아니 축구 그 자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 중 일부는 서포터가 축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수도권의 한 구단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이 구단 사람들은 서포터들을 성가신 존재로 생각해요. 요구사항을 말해도 무시하구요"라고 말했다. 약 10년 전 한 구단의 단장은 "축구단에 서포터가 무슨 소용이 있나. 몇 명되지도 않아서 구단 수익에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 2011. 11. 22.
2006 올스타전에서의 연고이전 반대시위 2006년 국가대표 앙골라전에서의 시위 이후, 부천 축구팬의 자체적인 창단 작업이 진행되는 와중에 한번의 시위가 더 있었다. 2006년 8월 20일 인천 문학경기장. 2006 하우젠 K리그 올스타전 경기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각 구단의 서포터들은 연고이전 반대시위를 다시 한번 했다. 국가대표 경기 보다 사람 수는 적었지만, 강도는 쳐지지 않았다. 덕분에 경기장은 좀 어수선했다. 하지만, 중계진도 일부 인터넷 매체를 제외한 언론도 이 시위를 외면했다. 서포터들은 게속해서 옛 부천과 안양의 응원가를 불러댔다. 부천의 팬들은 참으로 오랜만에 자신들의 응원가를 목놓아 불러볼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안양팬은 말할 것도 없고.. 관련 시위는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이 시위 역시 한국 연고지이전사에 남을 시위였다. 당.. 2011. 11. 22.
대행사에 이어 K위원도 포기, 결국 다시 팬만 남았다 K씨와 창단 TF는 많은 회의를 했다. 회의는 처음에는 부천시에서 하다가 점점 서울지역에서 하는 날이 많아졌다. 주로 K씨의 동선이 서울 쪽이었기 때문이다. 잠실의 올림픽파크텔에서 럭셔리하게 커피를 마시며 회의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K씨의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의 사무실 한 켠에서 회의를 하며, "앞으로 이곳을 아지트로 삼고 일을 하자"는 말을 나누며 고정적인 공간이 생긴 것은 자축하기도 했다. 조직이 갖추어지고, 주로 이름을 빌려주는 수준이었지만 부천시의 인사들도 조금씩 참여를 시키는 등 조금씩 자리를 잡아 갔다. K씨는 시청도 직접 방문하는 등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2007년 10월 창단 설명회. 소중한 사람들이 사진 속에 들어 있다. 중간중간 오해도 갈등도 있지만, 이렇게 힘든 시절을 생각하며 모.. 2011. 11. 21.
대행사의 창단작업 포기! 그러나 새롭게 다가온 희망 창단 및 운영 대행사 선정, 분데스리가 마케팅 담당 에릭 로렌츠 방한 등 기세 좋게 시작한 부천의 창단 작업은 이후 소강 상태에 빠졌다. 그 사이 부천서포터도 일부 이탈했다. 새로운 취미를 만든 친구들도 생겼다. 다행히 2006년에는 월드컵이라도 있어서 아무 생각없이 축구를 볼 수 있는 여건은 되었다. 부천서포터 일부도 독일을 찾았다. 그들은 경기장에 부천FC 창단을 기원하는 걸개를 내걸었다. (사진 참조 : 왼쪽의 "세계가 비웃는 연고이전" 걸개는 독일 현지에서 급하게 제작해 걸었다. 하노버) 하지만 귀한 시간은 그냥 흘렀다. 월드컵을 전후로 기업과 지자체의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았을 때 창단 작업을 진행하려던 계획은 어디로 갔는지 모를지경이었다. 당시에는 대행사와도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월드컵 등.. 2011. 11. 18.
분데스리가 관계자의 공수표, 더뎌지는 창단 작업 그러나 기대와 달리 분데스리가 마케팅 담당은 이후 후속 액션을 보이지 않았다. 부천 측에서 연락을 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중간의 대행업체가 관리를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시점 이후 창단된 부천FC 1995는 지속적으로 분데스리가에 연락을 했고, 당시 논의한 내용을 이어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분데스리가 사무국에서는 에릭로렌츠가 자리를 옮겼다며 후속 대화는 하지 않았다. 부천으로서는 아쉬운 순간이었다. 당시에 에릭 로렌츠는 부천에게 분데스리가의 유서 깊은 팀들의 창단 및 구단 운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자매결연 등을 추진하는 등의 의견을 내놨다. 당시 기사를 찾아보면 이런 의견을 꽤 강하게 내놓았던 것을 알 수 있다. 현장에 와서 이토록 환영을 하고, 간절함을 보인 팬들을 본 이후에 침묵을 .. 2011. 11. 18.
동네 축구팬이 분석한 레바논전 패인 7 레바논 전은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경기에서 패해도 화는 나도 코치나 선수를 미워할 수 없는 경기가 있으나, 이번 경기는 전체적으로 '이해불가'였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정리해봤음. - 멘탈이 무너진 상태에서 경기 시작 6-0으로 얼마전에 이긴 팀과 경기다. 2진으로 붙어도 이기는 팀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레바논이 변했다지만, 설마 6-0으로 진 팀이 변해봤자 얼마나 변했겠는가. 이런 생각이 이번 패배의 시작이다. 코치진도, 전력분석요원도, 선수들도 준비는했겠지만, 멘탈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이기 때문에 치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덤비는 경기는 상대가 약팀이라도 좋은 결과를 바랄 수 없다. "약팀이라도 최선을 다하자"고 되뇌이는 것은 머리뿐이다. 가슴은 상대를 무시하고 있고, 그런.. 2011. 11. 17.
"부천FC 창단 돕겠다"는 분데스리가 관계자의 방한 창단 및 운영업체 선정 PT가 끝난 이후 별다른 이슈는 없었다. 다만, 창단을 위한 시민모임은 한숨 돌렸고, 업체는 본업을 진행하면서 창단을 위해 뛰어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팀이 사라진 후 상실감에 빠져서 도대체 주말에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이 시기에 집에 있는 가구를 도색하고, 길에 버려진 가구를 주어와서 수리해서 사용하는 일이 푹 빠졌다. 집에 페인트통이 난무하고, 베란다에는 항상 작업이 진행 중인 가구들이 있었다. 심지어 아파트 현관 타일도 직접 갈았다. 새벽 3시까지 타일을 갈다가 축구팀 생각나서 멍 하니 앉아 있다. 아무튼 업체가 정해진 후 2개월 반이 지난 2006년 8월 5일. 창단업체는 독일 분데스리가 사무국의 에릭로렌츠(Erik Lorenz) 마케팅 담당을 부.. 2011. 11. 14.
부천FC 창단 및 운영 대행업체 선정! 출발은 상큼 2006년 5월 21일 서울 대학로 붉은악마 쉼터. 부천FC 창단 및 운영 업체를 선전하는 PT 장소는 설레임으로 가득찼다. 부천팬들은 "이제 전문가들이 참여를 하면 창단 작업에 날개를 달겠구나"하는 희망을 품었다. 당시 시민구단 창단 조직위(시민모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행사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왔다. 조직위(시민모임) 간부들은 물론이고, 서포터들도 대거 행사장을 찾았다. 업체 관계자가 PT를 하고, 시민모임 간부들이 채점을 해서 가부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업체도 비교적 성실하게 준비를 했다. 이 과정만 거치면 1,2년 안에 K리그 팀이 창단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ㅠ.ㅠ 업체의 PT 중. 모두 진지하다. 시민모임 간부들은 더 심각하다. 시민모임 간부들은 당시 힘을 보태준 정망 고마운 분.. 2011. 11. 11.
구단 창단 및 운영업체 선정 PT 앞두고 야심찬 공지 2006년 5월 21일 창단 및 운영업체 선정 공지를 앞두고 조직위는 지금까지 진행사항을 팬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 구단이 사라진 여운이 가시지 않은 터라 어떤 소식이든 작은 진행에 사람들은 집중했고, 일희일비 했다. 일을 진행하는 조직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휴대폰 전화요금은 20만원에 육박했다. 평소 3,4만원에 비하면 많이 늘어난 통화량이다. 2006년 4월 어느날 조직위는 아래 이라는 공지를 올렸다. 내용을 이제와 읽어보니 이때만 해도 아직 K리그 팀 창단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직접 작성한 문건인데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부천지역 연고 프로축구단은 꿈이 아닙니다 본 시민모임은 지역민의, 지역민을 위한 축구단 창단을 지향합니다. 시민모임은 지역 축구단을 순식간에 잃은 아픔을 털.. 2011.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