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가이드(미쉐린 가이드/Michelin Guide)는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쉐린이 출판하는 레스토랑 평가 잡지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이 잡지가 부여한 별이 하나 줄었다는 이유로 요리사가 자살하는 일도 발생했다고 합니다. 별은 3개가 최고인데, 이는 해당 레스토랑을 가기 위해 따로 여행을 떠나도 좋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아무튼 전세계 관광객들이 이 잡지를 들고 멀리 타국의 외진 곳의 식당을 찾아갈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최근 도쿄의 레스토랑이 무더기로 별을 받아서 세계 맛지도의 지형이 도쿄를 중심으로 그려진다는 부러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요즘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판을 제작 중이라 합니다. 서울 등 한국 도시에는 안올까요? TV 맛집이라고 해서 어렵게 찾아가서 실망하는 경우가 절반이상인 상황에서는 무리일까요?
싱가포르에는 이 잡지가 소개한 레스토랑이 몇 곳 있습니다. 그중 한 곳이 '군터스(Gunther's)' 입니다. 싱가포르 여행 중에 들렀습니다. 여행 비용이 걱정이 됐지만 일단 돈 걱정하지 말고 먹기로 했습니다. 아, 그 보다는 예약을 안했기 때문에 자리가 있는지가 문제였습니다.
뙤약볕 속에 찾아간 군터스. 외관은 평범합니다. 보이는 건물 두세칸 정도가 군터스이고 주변에는 또 다른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유명 레스토랑이 모여있는 곳인가 봅니다. 근처에 싱가포르 최고의 호텔인 레플스가 있습니다. 다행히 자리는 있었습니다.
복장은 청바지, 반바지 차림이었고 굳이 복장이 문제라면 갈아입을 생각도 있었는데 실제로는 문제는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미슐랭 가이드에 나왔다고 너무 눈높이를 높였나요?
실내는 약간 어두컴컴 했습니다. 조용한 식당에서 플레시를 칠 수는 없었습니다. 식당은 매우 작았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게 거의 전부입니다. 홀에는 테이블이 5개 정도. 안보는 구석에 룸이 한두개 더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연장은 묵직했습니다. 컵 등은 지문 하나없이 깨끗했습니다.
음식은 와인 등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돈으로 4만원에서 20만원 정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습니다. 하긴 새벽부터 줄을 선다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우동집이 우리돈 3,000원 정도라고 들었는데, 가격이 음식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우리가 군터스를 찾은 시간은 오후 3시 경. 가격 부담이 적은 런치메뉴가 가능한지 물었습니다. 답은 오케이. 주문했습니다. 어른 둘에 아이 하나. 2인분만 주문했습니다. 그닥 배는 고프지 않았거든요. 와인도 한잔씩 주문했습니다. 요즘 강남의 에지간한 식당에 세식구가 가서 2인분 주문하면 뭐라고 합니다. 하지만 군터스에서는 별문제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이가 간단하게 먹을 군걱질꺼리와 장난 칠 펜과 종이를 갖다 주었습니다.
요리가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첫번째로 나온 것은 빵과 버터. 빵은 겉은 살짝 질기고 안은 부드러운 바게뜨 같은 것이었고, 매우 고소했습니다. 따뜻했습니다. 주문하지 않은 아이 몫까지 3접시를 챙겨주었습니다.
다음으로 나온 전채요리는 연어셀러드. 일단 연어의 상태가 매우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연어를 무지 좋아해서 평소 많이 먹는데, 군터스의 연어도 감칠맛이 상당했습니다. 질기지도 않았습니다. 부페가 아닌 것이 아쉬었습니다. 부페였으면 연어를 왕창 먹는 거였는데. --; 좋은 요리의 80% 이상이 재료라더니 이곳 역시 그런 것 같았습니다. 군데군데 뿌려진 삶은 계란 가루도 제 역할을 했습니다.
버섯, 바삭하게 구운 빵, 아채, 토마토 등이 어우러진 음식이 뒤를 이었습니다. 야채가 상당히 신선했고, 음식이 입에 들어갈 때는 뻣뻣한 느낌이 있다가 씹기 시작할 때는 즙을 한껏 내면서 부드럽게 뭉개지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메인이 스테이크였습니다. 육즙이 좔좔 흘렀습니다. 입에 넣는 순간부터 부드러웠고 씹을 때도 금새 입 속에서 흩어질 정도로 부드러웠습니다.
해산물 크림 스파게티가 연이어 나왔습니다. 홍합, 새우 등 재료의 맛은 아주 좋았습니다. 면은 부드러우면서도 씹히는 맛은 남아 있었습니다. 가느다란 것은 튀김입니다. 아이가 들고 아작아작 먹기 좋았습니다.
디저트. 이게 예술입니다. 페스트리에 각종 과일을 엊어져 오븐에 구운 것이 아닌가 추정되는데요, 베어물었을 때 바삭한 페스트리와 함께 각 과일이 팍 터지면서 향이 진동합니다. 과일 육즙은 금새 페스트리 조각들과 섞여서 입 속에서 반죽이 됩니다.
커피와 쿠키도 디저트로 나왔습니다. 즐거운 미각 여행이 끝나는 신호였습니다. 이때 책에서 보던 군터스 주방장이 나왔습니다. 레스토랑의 메인 요리사인 벨기에 출신 군터스 휴브레센(Gunther Hubrechsen) 입니다. 테이블 앞에서 인사를 하더니,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음식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아주 맛있고, 각 음식마다 아이디어가 흥미있었다"라고 답했습니다.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 감사 인사를 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외식할 때마다 저지르는 사고. 아이가 테이블에 물도 쏟고 좀 소동이 있었는데 종업원들이 조용히 처리해 주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왜 이 레스토랑이 미슐랭 가이드에 등장했는지 나름 이유를 분석해 봤습니다. 미슐랭 가이드는 남녀가 가족 등 일행으로 와서 식사를 하는데, 여러 번 온다고 합니다. 음식과 재료, 서비스의 일관성을 보기 위해서 랍니다. 하지만 난 한번 갔으니 이런 건 모르겠습니다.
다만, 친철함이 기본이 아닐까 합니다. 일부 고급 음식점 가며 눈치보며 먹었던 부담감은 없었습니다. 10만원대 메뉴가 주류인 레스토랑에서 용감하게 3만원짜리 시키고 눈치보는 그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일부 식당에서 느낀 과잉 친절로 인한 번거로움도 없었습니다. 와서 자꾸 말걸고 이것저것 필요하지 않은 서비스도 해주면 귀찮거든요.
그리고 레스토랑의 요리사와 종업원과 손님이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표정이나 행동 등에서 처음 온 것 같지 않은 느낌을 준다고 할까요? 우리나라 인기 식당 중에 욕쟁이 할머니가 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손님들이 느끼는 것은 '공감'의 매력이 아닐까요? '이놈아! 밥 쳐먹어'하는 말에 함께 자지러질 수 있는 느낌. 형식은 다르지만 군터스에서는 종업원이나 요리사가 손님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가끔 함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합니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서 미슐랭 가이드의 별을 받은 레스토랑 중에는 요리사가 손님들과 즐겁고 활기차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곳이 일부 선정됐다고 합니다. 부족한 것 제때 주고, 불편한 것 바로 해결해 주기 위한 커뮤니케이션도 음식 맛의 일부가 아닐까요?
음식의 맛은, 글쎄요. 제 입맛에 우리나라 식당에도 이 정도 맛난 곳은 널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재료는 심하게 좋은 것 같았습니다. 각 재료별로 '아, 이건 최고다'라는 느낌이 절로 들었습니다. 새우를 예로 들면 씹을 때 뽀드득 하며 터지는 탱탱함이 지금까지 맛본 새우 중 최고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디어도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패스트리와 과일의 만남, 가느다란 면튀김과 크림 스파게티의 조화, 버섯과 토마토 등 "이렇게도 조합이 되는구나"라는 아이디어가 좋은 점수를 받는 비결인 것 같습니다.
우리 돈 약 8만원 정도로 호사를 누리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우리 식구가 동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지출하는 비용과 비슷합니다. 영수증을 손님에게 확인 시켜준 후, 작고 예쁜 봉투에 넣어 줍니다. 군터스 로고가 있는 하얀봉투인데요, 영수증과 함께 추억도 봉투에 담아서 거리로 나왔습니다.
소화도 시킬 겸 근처에 레플스 호텔로 터벅터벅 걸었습니다. 여기서 꼭 사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싱가포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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